암사동선사유적지 1
암사동 선사주거지는 한강 남쪽 가장자리에 자리 잡았는데, 지금으로부터 약 6000년 전인 신석기 때 사람들이 모여 살던 집터예요. 그리고 청동기 때 유물들도 많이 쏟아져 나왔으므로 선사 때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아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아주 소중한 유적지라 하겠어요. 그럼 지금부터 같이 둘러볼게요.
☞ 안내 그림을 보면서 돌아볼 차례를 정하세요!
먼저 박물관에 가면 안내 그림부터 봐야 해요. 어떤 차례로 구경을 하는 게 가장 좋을지, 또는 어떻게 돌면 제 시간에 맞추어 볼 수 있는지 따위를 생각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암사동 안내 그림은 아쉽게도 번호가 벗겨져 있는 게 많고, 그 번호가 어떤 원칙과 기준에 따라 매겨져 있는지 종잡을 수 없어요. 조금만 신경 쓰면 되는데 참 아쉽네요.
아무튼 오늘은 안에 있는 전시관을 먼저 둘러본 뒤 바깥 전시장을 살펴볼 거예요.
☞ 박물관에 있는 시설물은 눈여겨봐야 해요!
먼저 정문이에요. 고인돌 문인데, 고인돌은 청동기 때 나타나는 무덤이에요. 그런데 암사동은 무엇보다 신석기 때 주거지로 널리 이름난 곳이잖아요. 그러니 뭔가 또 아쉽지요? 이왕이면 신석기 때 유물로 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문을 들어서면 쓰레기통이 하나 눈에 띄지요? 잘 보세요. 뭘 닮았나요? 맞아요! 빗살무늬토기를 본뜬 거예요. 그럼 여기서 문제 하나 낼게요. 암사동 신석기 사람들은 빗살무늬토기를 쓰레기통으로 썼게요, 안 썼게요?
☞ 제1전시관으로! 먼저 전시관이 어떤 걸 본떠 만든 건지 곰곰이 살펴보세요.
나올 때 다시 보면 대충 짐작이 갈 거예요. 자, 이제 안으로 들어가 볼게요.
전시관에 들어서면 움집터와 저장구덩이를 발굴한 게 나올 거예요. 경화처리란 특수 방법을 써서 내보인 거지요.
가운데 움집터가 있고, 그 둘레로 표와 모형전시(디오라마)를 꾸며 놓았어요. 또, 이곳에서 나온 유물도 함께 선보였고요.
▷ 집터를 보면 암사동 사람들의 건축 기술이 보여요!암사동에 산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알아보려면 같이 집터 발굴을 해 봐야 해요. 자, 잘 따라 오세요.
가만히 보니 집터가 여럿 있죠? 그건 무엇을 뜻할까요? 그렇죠! 같이 모여 살았다는 거지요. 어라, 집터 바닥에는 웬 구멍이 뚫려있네요? 맞아요! 기둥을 세운 자국이에요. 그러니 그 때 사람들도 집을 지을 때 이미 기둥을 세워 짓는 기술을 지녔다는 거죠. 어, 그런데 집터가 둥근꼴도 있고, 네 모서리를 부드럽게 죽인 네모꼴도 있네요?
우와, 그럼 이때부터 벌써 생김새가 다른 집을 지었다는 거잖아요! 그렇다면 오늘날 나타나는 여러 가지 건축기법이나 건축 기술, 건축 디자인이 다 이때부터 시작된 셈이다, 그죠? 정말 대단하지요?
게다가 바닥을 자세히 들여다보세요. 다른 게 뭐 보이죠? 그래요, 바로 화덕자리예요. 화덕자리는 불을 피웠다는 걸 뜻하니까 요리를 할 때 불을 썼다는 거고, 추우면 불을 지폈다는 걸 일러 주지요. 그러니까 오늘날 조리 시설과 난방 시설이 그 때도 다 있었다 이 말이에요! 또 다른 구덩이도 있다고요? 맞아요! 저장공이에요.
저장공은 물건을 두는 창고 같은 역할을 하는 거예요. 어때요, 암사동 사람들의 집! 보기보다 엄청나지요?
그럼 여기서 물음 하나. 왜 그 때 사람들은 땅을 파서 집을 지었을까요? 그건 이래요. 땅을 파 들어가면 겨울에 아무리 추워도 바깥보다 따뜻하게 되고, 여름엔 바깥보다 시원하게 되거든요. 참 신기하죠?
그러니까 그 때 사람들은 이런 자연과학 지식까지 다 익혀 놓았다 이 말이에요. 게다가 불길이 치솟거나 하면 불이 날 테니 그것도 다 계산해서 집을 지었고요. 그러니 얼마나 대단해요?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한 건축기술이 오늘날 보다 넓게, 그리고 하늘 높이 짓는 건축 기술이 생겨난 거예요.
▷ 신석기 때로 되돌아가 움집을 지어 봐요!
자, 그럼 이제 가만히 눈을 감고 신석기 때로 되돌아가 볼까요? 집터를 보면서 속으로 움집을 지어보자고요!
먼저 집 지을 터를 찾고, 땅을 파서 편평하게 다지는 거예요. 터를 너무 넓게 잡으면 집짓기가 힘들 테니 암사동처럼 4~6미터(m) 정도 넓이에 구덩이를 0.5~1미터(m)만 파자고요. 튼튼한 나무를 베고 다듬어 바닥 한 가운데다 구멍을 내 기둥을 세우고요, 불을 지필 화덕자리와 물건을 둘 저장공도 한 쪽에 마련하자고요.
이제 서까래(지붕을 잇기 위해 기둥에 경사지게 걸쳐놓는 나무)를 걸치고, 칡넝쿨처럼 질긴 끈으로 기둥과 서까래를 서로 단단히 엮어야겠죠? 작은 기둥도 세우고 엮어 문도 하나 냈어요.
그럼 남은 건 뭘까요? 그래요. 벽과 지붕을 나뭇잎이나 풀, 억새나 갈대 따위로 이어야지요. 이 때 천장 한 쪽에 살짝 공기구멍이라도 내 놓으면 환기장치까지 마련되는 셈이죠. 어때요, 근사하지 않나요?
자, 다들 집짓느라 힘들고, 배고프죠? 그럼 이제 돌도끼랑 화살을 들고 사냥을 떠나는 거예요. 멧돼지도 잡고, 물고기도 낚아 새로 지은 집에서 불을 지펴 구워 먹는 거예요. 고기가 불에 타 노릇노릇 익는 게..... 캬아, 생각만 해도 군침이 꼴깍 넘어 가지요?
▷ 암사동 사람들의 또 다른 삶을 찾아보세요!
이제 집터는 그만 보고 다른 유물을 살펴볼게요. 잘 다듬어진 돌도끼나 돌화살 같은 석기가 많이 나왔는데, 이는 먹고 살기 위해 짐승을 사냥하거나, 짐승 가죽을 벗겨 썼다는 걸 뜻해요.
공이가 있으니 뼈나 열매를 빻거나 깼을 터이고, 타다 남은 도토리가 있는 걸로 봐서 과일이나 열매를 따 먹었을 거예요. 또, 그물에 쓰는 추(어망추)나 작살, 낚시 바늘 같은 고기잡이 도구들로 봐서 암사동 사람들은 고기잡이 전문가들이었음을 알 수 있지요. 그렇게 시작한 고기잡이 기술이 수 천 년을 내려와 지금은 먼 바다까지 배를 띄워 고기를 잡을 수 있게 된 거고요. 그리고 돌로 만든 그물추를 자세히 들여다보세요. 가운데가 옴폭 들어갔지요? 바로 그 홈에 그물 줄을 잇는 거니 그 손재주가 여간 아니지요?
▷ 혁명이 일어났어요! 토기가 나타나고, 농사를 지었어요! 암사동 사람들은 밑이 뾰족한 빗살무늬토기도 만들었어요.
그런데 암사동 사람들은 왜 토기 밑바닥을 뾰족하게 만들었을까요? 모든 문화는 자연 환경에 영향을 받거든요. 그러니 강가 모래땅에 자리 잡은 암사동 사람들은 토기 바닥이 뾰족해도 손으로 모래땅을 쉽게 파서 둘 수 있으니 그렇게 했겠지요. 그럼 암사동 사람들은 왜 토기에다 무늬를 새겨 넣었을까요? 음.... 제 생각엔 이래요. 첫째, 사람은 누구나 제가 가진 것을 좀 더 아름답게 꾸미고 싶은 욕심이 있으니 그랬을 성싶고, 둘째, 자기가 늘 보거나 먹는 나뭇가지나 생선뼈를 새겼으니 거기에다 마음껏 먹고 싶다는 꿈을 담았겠지요.
그 때는 워낙 굶주리던 때니 배불리 실컷 먹기만 한다면 오래도록 건강하게 살 수
있다고 믿지 않았을까요?
또 혹시 모르잖아요? 날마다 그걸 보고 있으면 사냥이나 농사지을 힘이 저도 모르게 불끈불끈 솟아날지!
한편, 신석기 사회에 이르면 서툴긴 하나 비로소 농사가 시작되었어요.
이는 갈판이나 갈돌, 삽이나 반달꼴돌낫 따위를 보고 아는 거예요. 자, 그럼 그 때 농사는 어떤 농사였을까요?
그냥 밭을 갈고선 대충 씨를 뿌려 짓는 농사였죠, 뭐. 하지만 농사를 짓기 시작한 이 사건은 엄청난 사건이에요!
사람이 농사를 짓기 전에는 사냥감이나 따먹을 과일을 찾아 옮겨 다니며 살았거든요. 그런데 농사를 짓고 난 뒤로는 굳이 힘들게 옮겨 다닐 필요가 없어졌어요. 옮겨 다닐 필요가 없으니 집도 잘 지어야 하고, 농사도 더 많이 지어야 하고, 토기나 도구도 잘 만들어야 하지요. 사람 사회가 엄청나게 발전한 것은 물어보나마나고요!
☞ 자, 이제 제2전시관으로
암사동 선사유적지 1부 끝, 2부는 다음게시물에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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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여행기와 국내답사지 소개들은 여행으로 크는 아이들"굴렁쇠"에 연재되고 있습니다.
[출처] 암사동 선사유적지 - 1부 - |작성자 keca2007(구경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