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철과 김치 나눔
열흘전쯤이다. 집에서 연락이 와 김장을 했으니 김치를 가져가란다. 홀로 사는 내게 김치는 무엇보다 요긴한 음식. 올해는 유난히 배추와 무 파동을 거치며 김치값이 금값으로 치솟던 때라 지난 여름부터 1주일 전쯤까지 난 집에서 김치를 먹어보지 못했다. 그래 반가운 마음이 앞섰지만 이런저런 약속이 겹쳐 날마다 통화는 하면서도 정작 집에는 오늘까지도 가보지 못했다. 거의 날마다 김치를 가져가라고 성화지만 일단 잘 보관해 달라고 변명을 둘러대기에 급급하다. 그런데 그건 다 까닭이 있어서다.
일주일전쯤이다. 집으로 김치를 받으러 가려던 날, 예전 굴렁쇠 아이누리의 풀꽃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김치없지예? 김장 담그었으니 김치 좀 가져가이소!"
두 말 않고 한걸음에 달려가 김치를 한 통 가득 받아왔다. 배추김치와 총각김치. 고향인 영천 집에서 직접 거두어들인 싱싱한 채소라며 감과 사과, 햅쌀까지 덤으로 주는데 그 고마움을 말로 다 못한다. 집으로 와서 입 안 가득 배추김치와 총각김치를 차례로 집어넣고 먹는데, 맨 입에 먹어도 꿀맛이다. 아무튼 그 덕에 냉장고에 모처럼 김치가 들어가 있으니 여간 마음이 든든한 게 아니다. 이제 된장찌개만 해 먹던 데서 비로소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그 덕에 집에서 장마한 김치는 좀 더 본가 냉장고 신세를 져야 하겠지만.....
닷새전쯤이다. 형수님이 연락이 와 내가 사는 아파트로 온단다. 형님과 조카가 함께 왔는데, 손에 또 김치가 한 통 들려있다. 본가에 들러 한 통을 전하고 오는 길이란다. 굴을 한데 버무려 시원한 느낌이 나도록 김장을 했다는 거다. 형수님께 김치를 처음 받아보거니와 좋아하는 굴을 젓갈로 썼다니 또 군침이 절로 돈다. 그냥 날름 혀로 굴이란 놈을 한입에 감아 먹으니 그 시원함이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래 그 날 모처럼 형님네 식구랑 알콩달콩 시간을 보내며 막걸리도 한 잔 곁들이며, 형재애를 돈독히 나누었다. 그러니 냉장고 아래칸에 김치가 제법 꽉 찼다. 그 찬 김치만큼 마음에 여유도 더 생긴다.
어제다. 청도에서 연락이 온다. 평소 잘 아는 누님과 그 부군께서 청도로 오란다. 유기농 배추에다 전라도 유기농해산물로 김장을 했으니 가져가란다. 그래 사정이 있어 못간다 하니까 기어이 오늘 두 분이 작심하고 김치를 한 통 가득 또 가져온다. 그래 집에 가져와 배추김치를 한 입 베어무니 또 그 맛이 기막히다. 그래 한 점씩 먹다가 그만 라면을 끓여 작은 포기 하나를 다 해치우고 말았다. 이제는 냉장고에 한 가득 김치다. 이것만 해도 올 겨울 나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겠다.
사실 형님 내외도 그렇고, 나머지 두 분도 다 사업이 실패로 돌아가 쫄딱 망한 처지다. 어떻게 김장을 담글 재간이 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그렇게 쪼들리면서도 김치를 전해주는 그들을 보니 그래도 아직 이 세상은 살 만하다 싶다. 경제적 풍요로움과 산업의 발전을 찬양하고 있는 현대사회지만 우리네 삶은 갈수록 삭막해져 가는 이 즈음. 김장철은 여전히 민초에겐 더없이 귀중한 나눔의 가르침을 널리널리 퍼뜨린다. 내 가슴 너머, 그 분들 가슴 너머~~~! 훨훨~~~!
며칠 뒤엔 집에 들러 집에서 담근 김장 김치맛도 봐야겠다! ^*^